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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미사 (백) 2026년 4월 27일 (월)부활 제4주간 월요일착한 목자는 양들을 위하여 자기 목숨을 내놓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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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영근 신부님_* 오늘의 말씀(4/26) : 부활 제4주일, 성소주일

189297 최원석 [wsjesus] 스크랩 2026-04-26

 

* 제1독서 : 사도 2, 14ㄱ. 36-41

* 제2독서 : 1베드 2, 20ㄴ-25

* 복음 : 요한 10, 1-10

*<오늘의 강론>

오늘은 부활 4 주일이며, ‘성소 주일’입니다.

<제1독서>는 오순절에 베드로가 사도 베드로가 했던 설교의 결론입니다. 그는 예수님을 이렇게 선포합니다.

“하느님께서는 여러분이 십자가에 못 박은 이 예수님을 주님과 메시아로 삼으셨습니다.”(사도 2,36)

이는 우리가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았음에도 불구하고 하느님께서는 예수님을 우리의 “주님”이요 “메시아”로 삼으신 사랑을 드러내십니다.

<제2독서>에서 베드로 사도는 고백합니다.

“그분께서는 우리의 죄를 당신의 몸에 친히 지시고 십자나무에 달리시어,

죄에서는 죽은 우리가 의로움을 위하여 살게 해 주셨습니다.”(1베드 2,24)

<복음>에서는 “목자와 도둑의 비유”를 통해, 예수님께서 당신 자신을 계시하십니다.

비유 속의 “양 우리”에는 안과 밖을 연결하는 “문”이 있습니다. 그리고 “문”으로 들어가는 이는 양들의 목자요, 넘어 들어가는 이는 도둑이며 강도입니다. 그래서 말합니다.

“문지기는 목자에게 문을 열어 주고, 양들은 그의 목소리를 알아듣는다.”(요한 10,3)

여기서, “목자”라는 단어는 ‘먹이다’라는 동사에서 파생된 것으로, ‘양식을 먹이는 자’를, “양”은 양식을 찾아 따라다니는 이를, “문”은 드나들면서 목초를 찾아 얻을 수 있는 통로를, 그리고 ‘목자와 양’의 관계는 목소리를 알아보는 친밀한 관계입니다.

특별히 ‘문’은 안팎으로 들고나는 두 방향을 갖고 있습니다. 동시에, 이 “문”은 안과 밖을 연결하는 수평적 이동의 통로로서 뿐만 아니라, 하늘과 땅이라는 수직적 이동의 통로이기도 합니다. 곧 이 “문”을 통해서, 하느님의 사랑이 인류에게 내려오고, 인류의 사랑이 하느님께 올라갑니다. 그러니 ‘문’ ‘생명과 구원의 문’을 나타내기도 합니다.

그래서 안티오키아의 이냐시우스는 말합니다.

“그리스도는 아버지께 가는 문으로서 그 문을 통하여 하느님과의 일치로 들어간다.”

이 비유에서는 예수님께서는 말씀하십니다.

“문으로 들어가는 이는 양들의 목자다.

~목자는 자기 양들의 이름을 하나하나 불러 밖으로 데리고 나간다.”(요한 10,2-3)

그렇습니다. 만약 우리가 ‘양 우리’ 안에 머물러 편안히 자기만의 안식을 누리고자 한다면, 목자에게 귀 기울이지도 않고 목자를 따르지도 않는 양이 되고 맙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덧붙여 말씀하십니다.

“이렇게 자기 양들을 모두 밖으로 이끌어 낸 다음, 그는 앞장 서 가고 양들은 그를 따른다.

양들이 그의 목소리를 알기 때문이다.”(요한 10,4)

목자는 양들을 밖으로 이끌어 냅니다. 그러기에 우리는 우리 자신의 안주와 편리로부터 밖으로 나가야 합니다. 우리의 울타리는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차단된 울타리’가 아니라, 타인에게 자신을 내어주기 위해 ‘열려진 울타리’이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사랑 때문에, 세상을 위해 밖으로 나가는 일입니다. 사랑을 짊어지고 나가는 일입니다. 곧 생명과 구원을 짊어지고 나가는 일입니다. 사실, 당신께서도 그처럼 ‘성문 밖’으로 나가시어 십자가에 못 박히셨습니다.

그렇습니다. 교회는 교회 자신을 위해서가 아니라, 세상을 위한 사명을 지니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말씀하십니다.

“나는 문이다. 누구든지 나를 통하여 들어오면 구원을 받고, 또 드나들며 풀밭을 찾아 얻을 것이다.”(요한 10,9)

그렇습니다. 우리는 분명, “(문을) 드나들며 풀밭을 찾아 얻을 것입니다.” 바로 이것이 ‘주님의 양’에게 주어지는 ‘소명’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문이신 예수님을 통하여 드나들고 있는가?

혹은 들어가면, 나갈 필요가 없는 문으로 여기고 있지는 않는가?

사실, 예수님이라는 ‘문’은 ‘다시 문 밖으로 나가기 위해 들어가는 문’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프란치스코 교종께서는 교회의 사명을 이렇게 일깨우셨습니다.

“안락한 성전 안에만 머무는 고립된 교회가 아니라,

길거리로 나가 멍들고, 상처받고, 손에 흙을 묻힌 더러워진 교회가 되기를 나는 꿈꾼다.” 아멘. 

 

“나는 양들의 문이다.”(요한 10,7)

주님!

저를 받아 주소서!

당신 풀밭에서 생명의 풀을 뜯게 하소서.

당신 기쁨이 차오르고 당신 사랑에 깃들게 하소서.

제 생명이 당신 진리 안에서 거룩해지게 하시고,

당신의 집에 저의 거처를 마련해주소서. 아멘.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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