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GOOD NEWS 게시판

검색
메뉴

검색

검색 닫기

검색

오늘의미사 (백) 2026년 5월 4일 (월)부활 제5주간 월요일아버지께서 보내실 보호자께서 너희에게 모든 것을 가르쳐 주실 것이다.

가톨릭마당

sub_menu

부활 제5주간 월요일

189418 조재형 [umbrella] 스크랩 2026-05-03

누울 자리를 보고 다리를 뻗어라.’라는 말이 있습니다. 판단을 잘해야 한다는 뜻입니다. 미국의 트럼프 대통령은 작년 겨울에 베네수엘라의 대통령을 체포해서 미국의 법정에 세웠습니다. 베네수엘라는 부통령이 대행을 맡으면서 별다른 저항이 없었습니다. 지난 228일에 트럼프 대통령은 이번에는 이스라엘과 함께 이란을 공격했습니다. 이란의 최고 지도자와 군 수뇌부가 그 공격으로 사망했습니다. 베네수엘라처럼 이란도 별 저항 없이 미국의 공격을 받아들일 거로 생각했습니다. 미국의 군사력은 세계 최강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이란은 베네수엘라가 아니었습니다. 3,000년 넘는 역사를 가진 민족입니다. 제국을 이루었던 민족입니다. 험준한 산악이 있고, 바다가 있는 나라입니다. 그런 민족이기에 미국의 공격에 바로 반격하였습니다. 미국의 군사시설을 공격했고, 세계 원유의 20%가 움직이는 호르무즈 해협을 봉쇄한다고 했습니다. 이란 국민은 베트남 국민이 그랬던 것처럼 미국의 공격에 저항했습니다. 트럼프 대통령은 누울 자리가 아닌데 다리를 뻗었고, 그 영향으로 세계 경제는 심각한 어려움을 겪어야 했습니다.

 

지난 310일 미국 전쟁부 장관 피트 헤그세스는 기자단 브리핑에서 구약성경의 시편을 근거로 미국과 이스라엘의 이란 공격으로 촉발된 전쟁을 정당화했습니다. 그는 시편 1441절에서 나의 반석이신 주님께서는 찬미 받으소서, 내 손에 전투를, 내 손가락에 전쟁을 가르치시는 분이란 표현을 인용했습니다. 그러자 예루살렘 라틴 총대주교 피에르 바티스타 피자발라 추기경은 전쟁을 정당화하기 위해 하느님의 이름을 사용하는 것은 중대한 죄에 속한다.”라고 반박하면서, “하느님은 분쟁 속에 고통받고 죽어가는 이들과 함께 계시지, 종교를 정치적 목적에 이용하는 이들과 함께 계시지 않는다.”라고 역설했습니다. 미국의 전쟁부 장관도 누울 자리를 보고 다리를 뻗지 못했습니다. 마치 바리사이와 율법 학자들이 하느님의 이름으로 하느님의 아들을 십자가에 못 박으라고 했던 것과 같습니다. 대사제 가야파가 이스라엘 민족을 위해서 많은 사람이 죽는 것보다는 한 사람이 죽는 것이 하느님의 뜻이라고 말했던 것과 비슷합니다. 그것은 세상의 논리이지, 하느님의 뜻이 될 수 없습니다.

 

구약성경과 신약성경 모두 하느님을 계시하는 책이지만, 구약은 약속이고, 신약은 그 약속의 실현입니다. 계시의 정점은 신약성경이 증언하는 예수 그리스도이시고, 그 정점을 근거로 성경의 다른 내용들을 해석하는 것이 가톨릭의 전통적 성경 해석 원칙입니다. 이런 원칙에 따르면, 신약성경이 증언하는 예수님은 말씀과 행동으로 비폭력의 하느님을 선포하시고, 자신도 철저히 비폭력의 삶을 사셨기에 예수님을 믿고 따르는 사람이라면, 하느님의 이름으로 전쟁을 정당화할 수 없습니다! 말과 행동으로 철저히 비폭력을 추구하셨던 예수님을 하느님 계시의 절정이라고 믿는 그리스도인이라면, 구약성경의 일부 대목을 근거로 하느님의 이름으로 폭력과 전쟁을 정당화할 수 없습니다! 이스라엘의 네타냐후 총리는 역사적으로 예수님보다 칭기즈칸이 더 위대했다고 말하면서 자신들의 전쟁을 합리화하려고 합니다. 하지만 군사적으로 그렇게 막강했던 칭기즈칸의 제국은 지금 사라지고 없습니다. 그에 반해서 너무도 무력하게 십자가에 죽었던 예수 추종자들의 모임인 교회는 과거에도 있었고, 지금도 앞으로도 계속 존속할 것입니다.

 

사람들은 오늘 바오로와 바르나바를 신으로 생각했습니다. 바오로는 헤르메스로, 바르나바는 제우스로 생각했습니다. 세상의 관점에서는 그렇게 생각할 수 있고, 바오로와 바르나바도 그렇게 대접을 받으면서 기뻐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바오로와 바르나바는 그것은 누울 자리가 아니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발을 뻗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이렇게 말하였습니다. “여러분, 왜 이런 짓을 하십니까 우리도 여러분과 똑같은 사람입니다. 우리는 다만 여러분에게 복음을 전할 따름입니다. 여러분이 이런 헛된 것들을 버리고 하늘과 땅과 바다와 또 그 안에 있는 모든 것을 만드신 살아 계신 하느님께로 돌아서게 하려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신앙은 누울 자리를 보고 다리를 뻗는 것입니다. 우리가 누울 자리는 전쟁과 폭력이 아닙니다. 우리가 누울 자리는 권력과 명예가 아닙니다. 우리가 누울 자리는 겸손과 희생입니다. 우리가 누울 자리는 나눔과 사랑입니다. 그것이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보여 주셨던 누울 자리였습니다.

 

부활하신 예수님께서도 누울 자리를 잘 아셨습니다. 이제 교회의 시대, 성령의 시대를 아셨습니다. 그리고 제자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보호자, 곧 아버지께서 내 이름으로 보내실 성령께서 너희에게 모든 것을 가르치시고 내가 너희에게 말한 모든 것을 기억하게 해 주실 것이다.”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9 95 1

추천  9 반대  0

TAG

페이스북 트위터 핀터레스트 구글플러스

Comments *로그인후 등록 가능합니다.

0 / 500

이미지첨부 등록

더보기
리스트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