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전삼용 신부님_왜 예수님의 상처에서 빛이 솟아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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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9432 최원석 [wsjesus] 스크랩 10: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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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계명을 받아 지키는 이야말로 나를 사랑하는 사람이다.
나를 사랑하는 사람은 내 아버지께 사랑을 받을 것이다.
그리고 나도 그를 사랑하고 그에게 나 자신을 드러내 보이겠다." (요한 14,21)
찬미 예수님! 부활 제5주간 월요일입니다.
우리가 공경하는 '자비의 예수님' 성화에는 아주 신비로운 빛이 묘사되어 있습니다.
예수님의 심장 부근에서 붉은색과 푸른색의 두 줄기 빛이 세상을 향해 쏟아져 나옵니다.
성녀 파우스티나 코발스카는 환시 중에 이 빛의 정체에 대해 주님으로부터 직접 이런 설명을 들었습니다.
"두 빛줄기는 피와 물을 상징한다.
푸른 빛줄기는 영혼을 의롭게 하는 물을, 붉은 빛줄기는 영혼의 생명인 피를 의미한다.
이 두 빛줄기는 내 자비의 가장 깊은 심연에서, 고통에 신음하던 내 심장이 십자가 위에서 창에 찔려 열렸을 때 솟아 나왔다."
(출처: 성녀 파우스티나 코발스카, 『내 영혼 속의 하느님 자비』 299항)
주님은 당신의 매끄러운 피부가 아니라, 창에 찔린 ‘상처’에서 빛과 생명이 솟구쳤다고 말씀하십니다.
왜 하필 아픈 상처일까요? 그 상처는 바로 예수님께서 아버지의 뜻에 순종하여 당신의 자아를 죽였다는 지울 수 없는 증거이기 때문입니다.
우리 몸의 시스템은 지독하리만큼 효율적입니다. 여러분이 헬스장에서 무거운 덤벨을 들 때, 근육 속에서는 어떤 일이 벌어질까요? 근섬유들이 미세하게 찢어지는 '상처'가 납니다.
운동 후에 느끼는 뻐근한 통증은 내 몸이 상처 입었다는 신호입니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그다음입니다.
뇌는 이 상처를 감지하는 즉시 그 부위를 비상사태로 선포합니다.
그리고 혈액과 산소, 영양분의 90% 이상을 그 '상처 난 근육'에 집중적으로 퍼붓습니다.
가만히 누워있는 다리 근육에는 생존을 위한 최소량만 보내지만, 찢어지고 상처 입은 팔 근육에는 에너지를 독점시킵니다.
그 결과 상처 부위는 이전보다 더 크고 강한 근육으로 재탄생합니다.
이를 생리학에서는 '슈퍼 보상(Supercompensation)'이라 부릅니다.
하느님의 은총도 이와 정확히 일치합니다.
주님의 계명을 지키는 행위는 영적 근육을 가동하는 실천입니다.
내가 내 고집을 꺾고 주님의 뜻에 순종할 때, 우리 자아는 미세하게 찢어지는 통증을 느낍니다. '순종의 상처'가 생기는 것이지요.
바로 그 상처 난 영혼의 지점으로 하느님의 모든 은총과 지혜가 쏟아져 들어옵니다.
은총을 못 받는 이유는 여러분이 착하지 않아서가 아니라, 하느님의 명령에 따라 움직여 본 적이 없어 상처가 없기 때문입니다.
즉, 영적 근위축(Atrophy) 상태에 빠져 있기에 에너지가 공급될 이유가 없는 것입니다.
이 원리를 현대사에서 가장 극적으로 보여준 인물은 성 요한 바오로 2세 교황님입니다.
1981년 5월 13일, 성 베드로 광장에서 교황님은 저격범의 총탄에 복부를 관통당하는 치명적인
상처를 입었습니다.
의학적으로는 생존 자체가 기적이었지요.
하지만 성인은 그 상처를 하느님께 대한 순종의 제물로 봉헌했습니다.
놀라운 일은 그 이후에 벌어졌습니다.
고통스러운 수술 자국과 평생 이어진 육체적 쇠락이라는 '상처'가 있었음에도, 교황님의 선교 에너지는 이전보다 수십 배 강해졌습니다.
그는 129개국을 방문하며 지구를 30바퀴가 넘는 거리를 이동했습니다.
의료진은 "저분의 몸은 상처투성이인데, 어디서 저런 신적인 힘이 나오는지 모르겠다"며 혀를
내둘렀습니다.
교황님이 자신의 고통을 사명에 순종하는 '주유구'로 내어드렸을 때, 성령께서는 그 상처를 통해 활동의 에너지를 쏟아부어 주신 것입니다.
(출처: 안드레아 리카르디, 『요한 바오로 2세: 성자의 삶』)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은 당신의 계명을 지키는 이에게 "나 자신을 드러내 보이겠다"고 약속하십니다.
이는 하느님 나라의 R&D(연구개발) 투자 원칙입니다.
더 희생하는 이에게 더 큰 은총이 흐릅니다.
그에게 순종의 상처가 있기 때문입니다.
이를 위해서 일부러라도 상처를 내십니다.
1858년 2월 25일, 아홉 번째 발현 때 성모님께서는 베르나데트에게 기상천외한 명령을 내리십니다.
"가서 샘물을 마시고 몸을 씻어라." 그런데 그곳에는 샘물이 없었습니다.
베르나데트는 성모님의 말씀을 믿고 땅을 파헤치기 시작했습니다.
손톱이 깨지고 손가락이 진흙범벅이 되는 '상처'가 났습니다.
여인이 "진흙물을 마시고 풀을 뜯어 먹으라"고 하자, 베르나데트는 주저 없이 그 오물을 삼키고
쓴 풀을 씹었습니다.
지켜보던 군중은 비웃었습니다.
"베르나데트가 미쳤다! 흙을 파먹고 풀을 뜯다니!" 소녀의 자존심은 갈기갈기 찢겨나갔고, 사람들의 조롱이라는 날카로운 상처가 그녀의 가슴에 박혔습니다.
하지만 바로 그 '순종의 상처'가 난 지점에서 기적이 시작되었습니다.
베르나데트가 판 그 웅덩이에서 맑은 샘물이 솟구치기 시작한 것입니다.
그 물은 지금까지 수백만 명을 치유하는 '은총의 젖줄'이 되었습니다.
베르나데트가 자신의 체면과 이성을 꺾어 '자아의 상처'를 내지 않았다면, 루르드의 그 찬란한 빛의 샘물은 결코 터져 나오지 않았을 것입니다.
제가 사제로서 성당의 재정을 운영할 때, 돈을 어디에 쓰겠습니까?
단순히 친목 도모나 취미 생활을 하는 곳에는 예산을 아낍니다.
하지만 선교를 하겠다고 나서거나, 신자들을 행복하게 하려고 자기 자존심을 꺾어가며 봉사하는 이들에게는 제 모든 지식과 정성, 그리고 본당의 모든 에너지를 집중적으로 쏟아붓습니다.
이때 중요한 것은 '순종의 상처'입니다.
신부가 어떤 사목 방향을 제시했을 때, 내 경험과 다르더라도 "예, 신부님 뜻이 하느님 뜻이라 믿고 제가 한번 죽어보겠습니다"라며 자신의 고집을 꺾는 신자가 있습니다.
그가 자아를 죽일 때 입는 그 '마음의 상처'는 목자의 심장을 직격합니다.
사제는 본능적으로 그런 신자에게 모든 것을 다 주고 싶어 합니다.
그 상처가 바로 사제의 사랑이 흐를 수 있는 '주유구'가 되기 때문입니다.
교부 성 요한 크리소스토모는 이렇게 단언했습니다.
"하느님은 비단결 같은 매끄러운 영혼을 찾으시는 것이 아니라, 당신께 순종하느라 갈갈이 찢겨진 영혼을 찾으신다.
그 찢겨진 틈이야말로 하늘나라의 보화가 쏟아져 들어오는 유일한 통로이기 때문이다."
(출처: 성 요한 크리소스토모, 『마태오 복음 강론』).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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