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남양성모성지 이상각 신부님 - 내 평화를 너희에게 준다 | 이 평화는 다릅니다. 요한14,27-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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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9467 이윤경루카 [achim9202] 스크랩 1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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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들리는 마음의 깊은 곳에, 주님은 조용히 평화를 놓아주십니다.
“내 평화를 너희에게 준다”
불안한 마음 한가운데,
예수님은 평화를 건네십니다.
제자들은 알고 있었습니다.
무언가가 일어나고 있다는 것을,
곧 스승과 헤어지게 될지도 모른다는 것을.
그래서 그들의 마음은
조용히, 그러나 깊이 흔들리고 있었습니다.
말로 꺼내지 않았지만
그 불안은 이미 그들 안에 있었습니다.
우리의 마음과 다르지 않습니다.
앞이 보이지 않을 때,
무언가 잃어버릴 것 같은 예감이 들 때,
아직 일어나지도 않은 일 때문에
마음이 먼저 무너질 때가 있습니다.
우리는 그런 순간마다
평화를 찾기 위해 애씁니다.
조금 더 안전해지면 괜찮아질 것 같고,
문제가 해결되면 괜찮아질 것 같고,
상황이 정리되면 마음이 편해질 것 같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끊임없이
‘괜찮아질 조건’을 찾으며 살아갑니다.
하지만 그 조건들은
언제든 흔들릴 수 있는 것들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평화를 원하면서도
쉽게 불안해지고,
쉽게 무너집니다.
이것을 잘 보여주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가우르고팔다스는 친구와 있었던 일을 전해 주며
우리가 느끼는 행복과 평화가 얼마나 쉽게 깨지는지를 이야기합니다.
인도에서 전기 공학을 공부할 때 친한 친구가 몇 명 있었다.
하루는 대학 매점에 가서 우리가 사모사 한 접시를 주문했던 기억이 난다.
네 명이 한 테이블에 앉았다. 우리 대학 매점은 강둑에 위치해 있었다.
수정같이 맑은 물이 흐르는 아름다운 강이었다.
그날은 날씨가 매우 좋았다. 최고의 계절이었고,
아름다운 강물이 흐르고, 손에는 따뜻한 사모사가 들려 있었다.
그리고 우리 친구 중 한 명이 사모사를 한 입 베어 물면서 말했다.
“아, 강은 너무나 아름답고, 날씨도 좋고,
사모사는 내가 살면서 먹어 본 것 중 최고의 맛이야!
겉은 바삭바삭, 그리고 안에 있는 속을 봐!
향신료가 적당해! 방금 만들어서 아주 뜨거워!
와, 정말 기막힌 사모사야!”
그는 사모사를 한두 입 먹었고,
절반은 아직 그의 손에 들려 있었다.
그때 다른 친구 한 명이 뛰어와서 말했다.
“시험 결과가 발표됐어!”
우리 모두 외쳤다.
“뭐라고?”
사모사 반쪽을 손에 들고 있던 친구가 물었다.
“나는 어떻게 됐어?”
그 친구가 말했다.
“너는······ 전 과목에서 낙제했어.”
이제, 사모사 절반은 여전히 그의 손에 있었다.
강물은 똑같았다.
날씨는 정확히 똑같았다.
사모사는 아직 뜨거웠다.
속은 알맞게 양념이 되어 있었다.
겉은 바삭바삭했다.
하지만 그는
그 사모사를 다시는 즐길 수 없었다.
행복과 평화는 사모사에 있었는가?
그렇다면 왜 여전히 즐기지 못하는가?
그의 마음 상태가 바뀌는 즉시
그것에서 얻는 행복과 평화도 바뀌었다.
이 이야기는
우리의 모습을 그대로 보여줍니다.
우리의 평화는
생각보다 아주 쉽게 무너집니다.
하나의 소식에도,
한마디 말에도,
상황의 변화에도
순식간에 사라집니다.
그래서 우리는 알게 됩니다.
우리가 붙들고 있던 평화는
참된 평화가 아니었다는 것을.
그래서 예수님께서 말씀하십니다.
“내가 주는 평화는
세상이 주는 평화와 같지 않다.”
세상이 주는 평화는
조건이 맞을 때만 유지됩니다.
하지만 예수님께서 주시는 평화는 다릅니다.
그 평화는
십자가를 앞에 두고도
사라지지 않는 평화입니다.
고통이 없어서가 아니라,
아버지께 자신을 맡기고 계시기 때문에
무너지지 않는 평화입니다.
이 평화는
상황에서 오는 것이 아니라
하느님과의 관계에서 오는 평화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순교자들에게서 이 평화를 봅니다.
토마스모어 성인은
왕의 뜻을 거슬렀다는 이유로
모든 것을 잃었습니다.
명예도, 자리도,
그리고 결국 생명까지 내어놓아야 했습니다.
보통 사람이라면
두려움과 분노, 억울함 속에서
마음이 무너졌을 것입니다.
하지만 그는 달랐습니다.
감옥에 있으면서도
신앙 안에서 평화를 지켰고,
가족에게 보내는 편지 속에서도
흔들리지 않는 믿음을 보여 주었습니다.
그리고 마지막 순간까지도
그는 유머를 잃지 않았습니다.
처형대에 오르며
“내 수염은 반역을 저지르지 않았으니
수염만큼은 살려주시오.”
이렇게 말하며
미소를 잃지 않았다고 전해집니다.
어떻게 이것이 가능했겠습니까.
그의 평화는
상황에서 온 것이 아니었기 때문입니다.
그의 평화는
하느님과의 관계 안에서
이미 뿌리를 내리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모든 것이 무너지는 순간에도
그는 무너지지 않았습니다.
이것이 바로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평화입니다.
“내 평화를 너희에게 준다.”
예수님의 평화는
문제가 사라진 상태가 아니라,
문제가 있어도
흔들리지 않는 상태입니다.
고통이 없어지는 것이 아니라,
고통 속에서도
무너지지 않는 평화입니다.
그래서 이 평화는
강한 사람만이 가질 수 있는 평화가 아니라,
하느님께 자신을 맡기는 사람이
받아들이는 평화입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를 앞에 두고도 평화를 말씀하신 것은
바로 이 때문입니다.
그분은
아버지께 모든 것을 맡기셨고,
그 관계 안에서
평화를 지니고 계셨습니다.
그래서 우리도
같은 길로 초대받습니다.
평화를 만들려고 애쓰는 것이 아니라,
평화를 주시는 분께
자신을 맡기는 길입니다.
프란치스코 교황님께서도
참된 평화는
우리가 스스로 만들어 내는 것이 아니라,
성령께서 주시는 선물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평화는
문제가 없는 삶에서 오는 것이 아니라,
문제 속에서도
하느님께서 함께 계심을 믿는 데서 옵니다.
그러므로 평화를 위해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세상을 먼저 바꾸는 것이 아니라,
우리 마음을 하느님께 여는 것입니다.
결국 우리는
이 질문 앞에 서게 됩니다.
나의 평화는
무엇 위에 서 있는가.
조건 위에 있는가,
아니면
주님과의 관계 위에 있는가.
예수님께서 오늘 우리에게 말씀하십니다.
“내 평화를 너희에게 준다.”
그 평화는
지금 이 순간에도
우리에게 주어지고 있습니다.
그 평화를 받아들이는 사람은
삶이 흔들려도
무너지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그 평화는
주님 안에서
지속되는 평화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다시 말씀하십니다.
“너희 마음이 산란해지는 일도,
겁을 내는 일도 없도록 하여라.”
이 말씀은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는 약속이 아닙니다.
어떤 일이 일어나더라도
너희는 무너지지 않을 수 있다는
주님의 초대입니다.
평화는
내가 모든 것을 붙들고 있을 때가 아니라,
주님께 내려놓을 때 시작됩니다.
용서할 때,
내어줄 때,
주님께 맡길 때
그 평화가 시작됩니다.
오늘
내 마음이 불안하다면,
상황을 먼저 바꾸려 하기보다
이 말씀 앞에 머물러 보십시오.
“내 평화를 너희에게 준다.”
그 평화는
지금 이 자리에서도
우리에게 주어지고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기도할 수 있습니다.
“주님,
제 마음에 당신의 평화를 주소서.”
그리고 묵주를 손에 쥐고
천천히 기도해 보십시오.
기도는
상황을 곧바로 바꾸지 않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기도는
우리 마음이 무너지지 않도록
주님 안에 붙들어 줍니다.
마지막으로
성모님께 이 마음을 맡겨 드립니다.
평화의 모후이신 어머니,
흔들리는 우리의 마음을
당신의 아드님께로 이끌어 주십시오.
불안 속에서도
주님을 바라보게 하시고,
십자가 안에서도
무너지지 않는 평화를
살아가게 도와주십시오.
아멘.
위의 글은 이상각 신부님의 블로그 글입니다.
[출처] 내 평화를 너희에게 준다. | 이 평화는 다릅니다. 요한14,27-31|남양성모성지 이상각 신부 블로그https://blog.naver.com/rsony4u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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