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부활 제6주간 월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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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9527 조재형 [umbrella] 스크랩 05: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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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살아가면서 누군가를 판단하고, 때로는 마음속으로 단죄하며 살아갈 때가 있습니다. 겉으로 드러내지는 않지만, 마음속에서는 이미 판결을 내려버리는 경우가 있습니다. “저 사람은 저럴 수밖에 없어.” “저건 용서받기 어려워.” 이런 생각을 할 때가 있습니다. 우리는 법정에 서 있는 판사가 아니지만, 마음속에서는 수없이 많은 재판을 하며 살아갑니다. 제가 한국에서 사목할 때의 일입니다. 한 신자 분이 찾아오셨습니다. 교회 봉사를 열심히 하셨던 분이었는데, 어느 순간 공동체 안에서 어려움을 겪게 되었습니다. 작은 오해가 쌓였고, 그 오해는 소문이 되었고, 결국 그분은 공동체 안에서 점점 위축되었습니다. 어느 날 그분이 조용히 이런 말씀을 하셨습니다. “신부님, 저는 이미 여기서 끝난 사람 같아요.” 그 말이 제 마음에 오래 남았습니다.
우리는 때로 한 사람의 전체를 보지 못하고, 한 사건으로 그 사람을 규정해 버립니다. 그러나 하느님께서는 그렇게 보지 않으십니다. 하느님께서는 그 사람의 과거뿐 아니라 현재와 미래까지 보십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그 사람이 다시 일어설 가능성을 보십니다. 최근에 저는 『Dead Man Walking』이라는 책을 떠올려 보았습니다. 한 수녀님이 사형수와 함께 마지막 시간을 동행하는 이야기입니다. 그 사형수는 끔찍한 죄를 지은 사람이었습니다. 누구라도 쉽게 용서할 수 없는 죄였습니다. 그러나 죽음을 앞둔 그 사람은 점점 자신의 삶을 돌아보게 됩니다. 그리고 마지막 순간에 자신의 죄를 인정하며 눈물로 고백합니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수녀님은 깊은 깨달음을 얻습니다. “이 사람은 죄인이지만, 동시에 하느님의 사랑을 받는 존재이구나.” 바로 그 순간, 중요한 진리를 보게 됩니다. 인간은 죄로만 규정될 수 없는 존재라는 것입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내가 아버지에게서 너희에게로 보낼 보호자, 곧 아버지에게서 나오시는 진리의 영이 오시면, 그분께서 나를 증언하실 것이다.” 그리고 성령께서 오시면 세상에 대하여 죄와 의로움과 심판에 관하여 드러내실 것이라고 하십니다. 여기서 우리가 생각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 우리가 이해하는 ‘심판’과 하느님의 ‘심판’은 다르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결과를 보고 판단합니다. 드러난 행동을 보고 판단합니다. 그러나 성령께서는 그 사람의 중심을 보십니다. 그 사람이 왜 그렇게 되었는지, 어떤 상처를 가졌는지, 그리고 다시 돌아올 수 있는지를 보십니다.
달라스에 와서 사목하면서도 비슷한 경험을 합니다. 어떤 분은 과거의 상처 때문에 마음을 열지 못하고, 어떤 분은 자신이 저지른 실수 때문에 공동체 안으로 들어오기를 두려워합니다. 그런데 그런 분들이 용기를 내어 다시 공동체로 돌아오는 모습을 보면, 저는 늘 느낍니다. “아, 하느님께서는 지금도 사람을 새롭게 하시는구나.” 십자가 위에서 예수님 옆에는 두 사람이 있었습니다. 한 사람은 끝까지 예수님을 조롱했지만, 다른 한 사람은 마지막 순간에 이렇게 고백합니다. “예수님, 당신의 나라에 들어가실 때 저를 기억해 주십시오.” 그는 평생을 잘 살지 못했지만, 마지막 순간에 돌아섰습니다. 그리고 예수님께서는 말씀하십니다. “너는 오늘 나와 함께 낙원에 있을 것이다.” 이 장면은 우리에게 분명히 말해 줍니다. 하느님의 심판은 단죄가 아니라 초대라는 것입니다. 하느님의 정의는 복수가 아니라 회복이라는 것입니다.
우리는 때로 자신을 단죄하기도 합니다. “나는 부족하다.” “나는 이미 늦었다.” “나는 용서받기 어렵다.” 그러나 그것은 우리의 생각일 뿐입니다. 하느님께서는 말씀하십니다. “나는 너를 포기하지 않는다.” “나는 끝까지 기다린다.”
부활의 신앙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죽음이 끝이 아니라는 것, 죄가 마지막이 아니라는 것, 하느님의 사랑이 언제나 더 크다는 것을 믿는 것입니다. 우리가 해야 할 일은 단 하나입니다. 판단하는 자리에 서는 것이 아니라, 함께 걸어주는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단죄하는 사람이 아니라, 기다려 주는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누군가의 마지막 순간까지 포기하지 않는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어쩌면 우리 주변에도 ‘마음속에서 죽음을 선고받은 사람’들이 있을지 모릅니다. 이미 포기된 사람처럼 살아가는 이들이 있을지 모릅니다. 그들에게 필요한 것은 판단이 아니라, 함께 걸어주는 한 사람입니다. 진리의 성령께서 예수님을 증언하듯이 우리들 또한 예수님을 우리의 삶을 통해서 증언해야 합니다. 그것이 참된 신앙입니다.
하느님은 끝까지 기다리시는 분이십니다. 우리는 그 기다림의 도구가 되어야 합니다.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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