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주님 승천 대축일
-
189629 조재형 [umbrella] 스크랩 2026-05-16
-
우리는 살면서 억울한 일을 겪습니다. 하지도 않은 일을 했다고 오해를 받기도 하고, 아무리 설명해도 믿어주지 않는 순간을 만나기도 합니다. 그럴 때 우리는 묻습니다. “왜 이런 일이 나에게 일어나는가” 그리고 더 깊이 들어가면 이렇게 묻게 됩니다. “정말 하느님은 계시는가 정의는 있는가” 저 역시 사목하면서 비슷한 이야기를 참 많이 듣습니다. 어떤 분은 교우들과의 관계에서 오해받아 힘들어하십니다. 또 어떤 분은 과거의 일 때문에 지금도 평가받는 것 같아 마음이 위축되어 있습니다. 심지어 어떤 분은 “신부님, 저는 정말 그런 사람이 아닌데요” 하면서 눈시울을 붉히기도 합니다. 억울함은 사람을 작게 만듭니다. 말하기를 두렵게 하고, 관계를 피하게 하고, 결국은 마음의 문을 닫게 만듭니다.
오늘 우리는 예수님의 승천을 기념합니다. 그런데 승천을 이해하려면 먼저 십자가를 보아야 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아무 죄도 없으셨지만 고발당하셨습니다. 거짓 증언이 있었고, 왜곡된 판단이 있었고, 군중의 소리가 있었습니다. 결국 예수님은 십자가에 못 박히셨습니다. 이것이 인간의 정의입니다. 불완전한 정의입니다. 때로는 진실이 지는 것처럼 보이는 정의입니다. 그러나 하느님께서는 거기서 멈추지 않으셨습니다. 부활이 있었습니다. 하느님께서는 말씀하십니다. “너희의 판단이 마지막이 아니다. 내가 판단한다.” 이것이 하느님의 정의입니다. 그리고 오늘, 예수님께서는 승천하십니다. 그런데 사도행전을 보면 아주 흥미로운 장면이 나옵니다. 제자들이 하늘을 바라보고 있을 때 천사가 이렇게 말합니다. “갈릴래아 사람들아, 왜 하늘을 쳐다보고 있느냐”
이 말은 꾸중이 아니라 방향입니다. “이제 거기서 멈추지 말고, 다시 삶의 자리로 돌아가라.”라는 것입니다. 갈릴래아는 제자들의 일상입니다. 물고기를 잡던 자리, 실패도 있었고, 기쁨도 있었던 자리입니다. 예수님께서 그들을 처음 부르셨던 자리입니다. 승천의 핵심은 여기에 있습니다. 하늘을 바라보는 신앙이 아니라, 다시 갈릴래아로 돌아가는 신앙입니다. 우리는 억울함을 만나면 자꾸 하늘만 바라보게 됩니다. “왜 저에게 이런 일이 생겼습니까” “언제 해결해 주십니까” 그러나 오늘 예수님께서는 말씀하십니다. “왜 하늘만 쳐다보고 있느냐 다시 갈릴래아로 가라.” 억울함이 사라진 다음에 가라는 것이 아닙니다. 모든 것이 해결된 다음에 가라는 것도 아닙니다. 지금 그 자리에서, 그 상태로, 다시 살아가라는 것입니다.
제가 만났던 한 교우가 있습니다. 사람들과의 오해 때문에 공동체를 떠나고 싶다고 했습니다. 너무 억울해서 더 이상 사람을 만나고 싶지 않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다시 성당에 나왔습니다. 그리고 조용히 봉사를 시작했습니다. 누가 알아주지 않아도, 누가 칭찬하지 않아도, 그분은 자신의 자리에서 다시 살아가기 시작했습니다. 그것이 바로 갈릴래아로 돌아가는 삶입니다. 그것이 바로 부활의 삶입니다. 사제로서 저도 배웁니다. 억울함을 없애는 것이 먼저가 아니라, 그 속에서도 하느님께서 나를 부르시는 자리로 다시 가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을 말입니다. 사필귀정은 반드시 이루어집니다. 그러나 그것이 우리의 시간표대로 이루어지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기다리기보다 살아야 합니다. 증명하기보다 복음을 살아야 합니다.
예수님의 길은 분명합니다. 십자가를 지나 부활로, 그리고 승천으로 이어집니다. 그러나 거기서 끝이 아닙니다. 다시 갈릴래아입니다. 다시 우리의 삶입니다. 오늘 우리는 선택해야 합니다. 억울함에 머물 것인가, 아니면 다시 걸어갈 것인가. “주님, 억울함 속에서도 멈추지 않게 하소서. 하늘만 바라보지 않고, 다시 삶의 자리로 돌아가게 하소서. 갈릴래아에서 복음을 살아가는 우리가 되게 하소서.”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

-
- 전삼용 신부님_"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 드립니다"의 의미
-
189634
최원석
2026-05-16
-
반대 0신고 0
-
- 너희가 나를 사랑하고 또 내가 하느님에게서 나왔다는 것을 믿었기 때문이다.
-
189633
최원석
2026-05-16
-
반대 0신고 0
-
- 양승국 신부님_기도의 목적은 황홀한 체험에 머무는 데 있지 않습니다!
-
189632
최원석
2026-05-16
-
반대 0신고 0
-
- 이병우 신부님_조욱현 신부님_ 김건태 신부님 묵상
-
189631
최원석
2026-05-16
-
반대 0신고 0
-
- 이영근 신부님_* 오늘의 말씀(5/16) : 부활 제6주간 토요일
-
189630
최원석
2026-05-16
-
반대 0신고 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