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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미사 (백) 2026년 5월 17일 (일)주님 승천 대축일(홍보 주일)나는 하늘과 땅의 모든 권한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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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삼용 신부님_주님 승천을 기뻐할 수 있는 자격: 파견의 기쁨

189651 최원석 [wsjesus] 스크랩 09:23

 

"예수님께서는 그들을 베타니아 근처까지 데리고 나가신 다음, 손을 드시어 그들에게 강복하셨다.
이렇게 강복하시며 그들을 떠나 하늘로 올라가셨다.
그들은 예수님께 경배하고 나서 크게 기뻐하며
예루살렘으로 돌아갔다." (루카 24,50-52) 
 
찬미 예수님! 오늘은 주님 승천 대축일입니다.
오늘 복음을 가만히 묵상해 보면 제자들의 반응이 참으로 이상합니다.
예수님께서 제자들을 남겨두고 하늘로 올라가 버리셨습니다.
사랑하는 스승님, 의지하던 부모님이 나를 떠나가셨는데 제자들은 슬퍼하며 울부짖기는커녕, 성경의 표현대로 "크게 기뻐하며" 예루살렘으로 돌아갔다고 합니다. 
 
우리의 인간적인 상식으로는 주님께서 우리를 진정으로 사랑하신다면 언제나 우리 곁에 찰딱 붙어서 우리를 보살펴 주시는 것이 당연한 일 아닙니까?
그런데 주님은 왜 굳이 세상을 떠나 하늘로 올라가셔야만 했을까요?
그리고 제자들은 주님이 떠나셨는데 도대체 무엇이 그리 좋아서 기뻐 뛰며 돌아간 것일까요? 
 
오늘 우리는 그 신비를 풀기 위해 '파견'과 '성장'이라는 위대한 생명의 법칙 속으로 들어가 보려 합니다.
먼저, 제가 어렸을 때 겪었던 아주 충격적이고도 개인적인 일화 하나를 들려드리고 싶습니다.
제가 일곱 살 생일을 맞았을 때의 일입니다. 어머니께서 저의 어깨를 잡으며 아주 단호한 표정으로 이렇게 폭탄선언을 하셨습니다.
"너는 이제 일곱 살이 되었다.
엄마는 너를 일곱 살까지만 키워주는 거다. 이제부터 네가 다치든, 잘되든 그것은 다 네가 책임져야 할 네 인생이다. 엄마 탓을 해서는 안 된다." 
 
일곱 살짜리 꼬마가 듣기에는 너무나 서운하고 청천벽력 같은 소리였습니다.
어머니는 제가 혼자 집에 있는 시간이 많아지니, 스스로를 보호하며 강하게 자라라는 뜻에서
그런 모진 말씀을 하셨을 것입니다. 
 
그런데 참으로 신기한 일이 벌어졌습니다. 어머니의 그 무서운 파견 선언을 들은 날부터,
어린 제 마음속에 두려움과 동시에 아주 '묘한 쾌감'이 솟아나기 시작한 것입니다.
'아, 이제부터 내 인생은 진짜 내 것이구나! 내가 이 인생의 주인이구나!' 
 
어머니가 저를 품 안에서 밀어내어 파견하신 그 서운했던 순간이, 역설적으로 제가 부모의 부속품에서 벗어나 내 삶의 운전대를 직접 쥐게 된 가장 가슴 벅찬 독립의 순간이었던 것입니다.
돌이켜보면, 그때 어머니가 저를 세상으로 매몰차게 파견하지 않으시고 서른 살, 마흔 살이 될 때까지 품에 안고 밥을 떠먹여 주셨다면, 지금 사제로서 영혼들을 돌보는 오늘의 저는 결코 존재하지 못했을 것입니다. 
 
부모가 자녀를 사랑한다고 해서 죽을 때까지 품에 껴안고 젖을 물리는 것은 사랑이 아닙니다.
그것은 자녀의 인생을 파괴하는 집착입니다. 진정한 부모는 자녀를 때가 되면 세상 속으로
결혼시켜 내보내야 합니다.
부모를 떠나는 것이 자녀에게 진짜 기쁨이 되는 이유는, 자녀가 부모를 떠나야만 비로소 자신도 누군가를 낳고 기르는 '새로운 부모(생명)'로 완성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 위대한 파견의 목적을 너무나도 감동적으로 보여주는 실제 영상이 하나 있습니다. 
호주의 한 야생동물 구조대원이 길가에 버려진 갓 태어난 새끼 캥거루를 발견했습니다.
그는 새끼 캥거루를 집으로 데려와 밤낮으로 우유를 먹이고 정성껏 돌보았습니다.
캥거루는 그 구조대원을 진짜 엄마로 여겼고 늘 그의 품을 파고들었습니다. 

시간이 흘러 캥거루가 다 자랐습니다.
구조대원은 가슴이 찢어지게 아팠지만, 캥거루가 캥거루답게 살게 하려고 그를 넓은 야생으로 방사했습니다.
처음에는 캥거루도 엄마 같은 사람을 떠나지 않으려 발버둥을 쳤습니다.
하지만 결국 자연으로 파견되어 돌아갔습니다. 
 
그리고 몇 년이라는 시간이 흐른 어느 날, 캥거루 한 마리가 구조대원의 집 앞마당으로 껑충껑충
뛰어 들어왔습니다.
놀랍게도 옛날 그 캥거루였습니다.
그런데 그 캥거루는 혼자가 아니었습니다.
자신의 배에 있는 아기 주머니 속에, 아주 예쁜 자기 새끼를 소중하게 품고 온 것입니다. 
 
캥거루는 구조대원 앞으로 다가와 주머니 속의 새끼를 자랑스레 보여주었습니다.
그것은 자기를 키워준 은인에게 바치는 최고의 선물이었습니다.
"엄마, 저도 이제 당신처럼 생명을 낳고 돌보는 진짜 어른이 되었습니다!"라는 감사의 인사였던 것입니다.
만약 그 캥거루가 구조대원이 자기를 버렸다고 원망하며 파견의 의미를 깨닫지 못했다면, 결코 그 앞마당으로 다시 돌아올 용기를 내지 못했을 것입니다. 자신이 품은 새끼(생명)가 있었기에
당당하게 다시 돌아올 수 있었던 것입니다. (출처: 동물 다큐멘터리 'The Kangaroo Sanctuary' 실화). 
 
우리가 오늘 주님 승천 대축일을 기뻐해야 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하늘로 올라가시며 우리를 떠나신 것은 우리를 고아로 버려두신 것이 아닙니다.
우리를 영원한 젖먹이로 두지 않으시고, 이제는 우리 스스로 세상 속으로 들어가 수많은 영혼을
구원하여 새끼 캥거루처럼 가슴에 품고 돌아오라고 파견하시는, 우리를 향한 하느님의 '위대한 신뢰'이자 '독립선언'인 것입니다.  
 
우리가 매주 봉헌하는 미사(Missa)의 어원 자체가 바로 '파견'이라는 뜻입니다.
미사 끝에 사제가 "미사가 끝났으니 가서 복음을 전합시다"라고 말할 때의 라틴어가 "이테, 미사 에스트(Ite, missa est)"입니다. '이테(Ite)'는 '가라(Go)'라는 강력한 명령형 동사입니다.
'미사(Missa)'는 '파견(Dismissal, Sent)'을 의미하는 명사이며, '에스트(est)'는 '~이다(is)'라는 뜻입니다.
즉 직역하면 "가라, 파견이다!" 혹은 "가라, 너희는 세상으로 보내어졌다!"라는 엄중한 선언입니다. 
 
흔히 쓰는 사명, 곧 '미션(Mission)'이라는 단어도 바로 이 '미사(Missa)'에서 파생되었습니다.
성체를 먹고 자라난 우리는 이제 세상의 영혼들을 살리기 위한 선교사(Missionary)로 파견되는
위대한 신분 상승을 이룬 것입니다. 
 
그렇다면, 예수님은 우리를 험난한 세상에 파견해 놓고 하늘에서 뒷짐 지고 구경만 하실까요?
결코 그렇지 않습니다.
부모는 자식을 떠나보내지만, 결코 자식을 완전히 버리는 법이 없습니다.
구약성경 탈출기 2장에 나오는 모세의 어머니 요게벳의 이야기를 보십시오. 
 
파라오가 히브리 사내아이를 모두 죽이라고 명령했을 때, 요게벳은 아기 모세를 살리기 위해
피눈물을 머금고 갈대 상자에 담아 나일강에 띄워 보냅니다.
아기의 온전한 삶을 위해 기꺼이 끔찍한 파견을 결단한 것입니다.
하지만 요게벳은 아기를 그냥 버려두지 않습니다.
누나 미리얌을 몰래 상자 뒤로 따라가게 합니다. 
 
결국 파라오의 딸이 모세를 건져내자, 미리얌이 나서서 유모를 소개해주겠다고 합니다.
그 유모가 누구였습니까? 바로 모세의 친엄마 요게벳이었습니다.
요게벳은 궁궐에 유모로 들어가 매일 모세에게 자신의 젖을 물리고, 히브리인의 신앙을 뼛속 깊이 가르칩니다.
이집트의 왕궁이라는 세상 한복판에 파견되었지만, 모세는 보이지 않는 어머니의 젖과 가르침을 먹으며 이스라엘을 구원할 위대한 영도자로 자라납니다. (출처: 『주석 성경』 탈출기 2장). 
 
예수님의 승천도 이와 완벽하게 똑같습니다. 예수님은 승천하시며 세상을 향해 우리를 갈대 상자처럼 띄워 보내셨지만, 결코 우리를 홀로 버려두지 않으십니다.
요게벳이 궁궐에 몰래 들어와 젖을 먹였듯,
주님께서는 하늘의 절대적인 도우심인 '성령'을 우리에게 유모처럼 보내주십니다.
세상 한복판에서 우리가 영적으로 굶어 죽지 않도록, 성령을 통해 끊임없이 당신의 은총과 가르침을 먹이시는 것입니다.
주님 승천 대축일 다음에 곧바로 '성령 강림 대축일'이 이어지는 교회의 전례 주년은 바로 이 기막힌 영적 섭리를 보여줍니다.
주님이 승천(파견)하셔야만, 성령(어머니의 젖)이 우리에게 올 수 있기 때문입니다. 
 
교회의 위대한 학자이신 성 아우구스티누스 주교님은 『요한 복음 강해』 제94해설에서 

주님께서 우리 눈앞을 떠나셔야만 했던 필연적인 이유를 이렇게 정확히 설명하셨습니다.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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