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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미사 (홍) 2026년 6월 1일 (월)성 유스티노 순교자 기념일소작인들은 주인의 사랑하는 아들을 붙잡아 죽이고는 포도밭 밖으로 던져 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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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중 제9주간 월요일, 성 유스티노 순교자 기념]

189901 박영희 [cornelia2] 스크랩 12:38

[연중 제9주간 월요일, 성 유스티노 순교자 기념] 마르 12,1-12 "집 짓는 이들이 내버린 돌, 그 돌이 모퉁이의 머릿돌이 되었네. 이는 주님께서 이루신 일 우리 눈에 놀랍기만 하네."

 

 

 

 

오늘 복음에 등장하는 ‘포도밭 소작인의 비유’에서 포도밭 주인은 하느님을, 주인이 보낸 종들은 예언자들을, 사랑하는 아들은 예수님을, 악한 소작인들은 수석 사제들과 율법 학자들 같은 유다교의 종교 지도자들을 가리킵니다. 이 비유의 핵심 포인트는 소작인들의 ‘무지’이지요. 그 누구보다 하느님 말씀에 대해, 그리고 율법에 대해 잘 안다고 자부하던 그들이, 정작 하느님께서 보내신 그리스도를 못알아보고 배척하며 심지어 십자가에 못 박아 죽이기까지 하는 모습에서 세속의 지식과 하늘의 참된 지혜가 엄연히 서로 다름을 보게 됩니다. 그리고 아무리 많이 배우고 똑똑한 이들도 탐욕에 눈이 멀면 다른 건 아무 것도 눈에 뵈지 않는 ‘바보 천치’가 된다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오늘 비유에서 ‘소작인’으로 상징되는 유다교의 종교 지도자들은 당시의 기준으로 보면 그 누구보다 대단한 지식과 능력을 갖춘 ‘엘리트’들이었지만, 정작 그들이 하는 선택은 어리석기 짝이 없습니다. 하느님이 어떤 분이신지를 몰랐기 때문입니다. 그분께서 보내신 예언자들을 알아보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거듭되는 불충과 배신에도 불구하고 하느님께서 왜 당신 아들까지 보내셨는지 그분 마음을 몰랐기 때문입니다. 마지막으로 자기들이 어떻게 살아야 하며 무엇을 해야 할지 자기 직분과 소명을 깨닫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하느님께서 심고 가꾸신 이스라엘이라는 포도나무에서 회개와 성화라는 열매를 거두어 그분께 ‘도조’로 바쳐야만 했습니다. 하느님께서 자기들에게 무상으로 베푸신 은총을 충만하게 누리는 만큼, 감사하는 마음으로 자기들이 받아 누린 은총의 ‘일부’라도 하느님을 위해, 그분 뜻을 이루기 위해 기꺼이 내놓아야만 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탐욕에 눈이 멀어 이스라엘이라는 포도나무를 자기들의 기득권을 유지하기 위한 ‘도구’로 삼으려고 했습니다. 자기들이 받은 은총을 당연하게 여기며 더 많은 것을 가지려고 했습니다. 그 결과 자신들이 회개하고 당신 뜻을 따르기를 바라시는 하느님의 마음을 외면하고, 마침내 그분의 아드님을 십자가에 못 박아 죽이는 ‘만행’을 저지르게 되지요.

 

주님께서는 시편의 구절을 인용하여 그들이 그 무지와 탐욕에서 깨어날 것을 촉구하십니다. “집짓는 이들이 내버린 돌, 그돌이 모퉁이의 머릿돌이 되었네, 이는 주님께서 이루신 일 우리 눈에 놀랍기만 하네.” 인간의 무지와 탐욕으로는 하느님의 큰 뜻을 절대 바꿀 수 없으니, 결국엔 모든 것이 하느님 뜻에 따라 올바른 방향으로 흘러갈 것이니 쓸 데 없는 고집 부리지 말고 회개하여 그분 뜻을 따르라는 뜻입니다. 하느님은 인간이 쓸 모 없다고 내버린 ‘잡석’을 머릿돌로 삼아 크고 단단한 건물을 지으실 수 있는 분입니다. 그러니 하느님 뜻이 반드시 이루어지리라는 믿음으로 그분께 순명하는 것이 가장 지혜로운 선택이겠지요. 비유 속 주인이 아들을 보낸 것은 소작인들을 심판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잘 타일러서 올바른 길로 돌아서게 하기 위함이었습니다. 즉 하느님은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해 당신 아들을 이 세상에 보내셨다는 뜻입니다. 이 부분에서 중요한 구절은 “마지막으로”라는 단어입니다. 주인이 소작인들에게 아들을 보낸 것은 잘못을 바로잡을 수 있는 “마지막 기회”를 준 것입니다.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예수님을 보내주신 것은 회개하여 구원받을 수 있는 “마지막 기회”를 주신 것입니다. 탐욕과 교만에 빠져 그 기회를 걷어차 버린다면 하느님께 받은 수많은 은총의 선물들을 모두 잃어버린 채 멸망하고 말 겁니다. 

 

* 함 승수 신부님 강론 말씀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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