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건태 신부님_조욱현 신부님_이병우 신부님 묵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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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471 최원석 [wsjesus] 스크랩 10: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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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건태 신부님_믿음과 기적
오늘 복음 말씀을 접하면서, 같은 이야기를 전하고 있는 다른 복음서에 비해 ‘참 짧다’ 하는 생각을 지울 수 없습니다. 두 가지 기적이 하나의 이야기 속에 담겨 있는 이 본문은 마르코 복음에서는 22개의 구절로, 루카 복음에서는 16개의 구절로 짜여 있는데 비해, 마태오 복음은 9개의 구절로 축약하여 전해주고 있기 때문입니다. 마태오 복음저자는 예수님의 새로운 가르침을 소개하는 ‘산상설교’(5-7장)에 이어, 8-9장에서 연속적으로 예수님의 행적 곧 ‘다수의 기적 이야기’를 전하는 과정에서, 분량을 고려하여 의도적으로 오늘의 기적 이야기를 축소하여 전하고 있는 것으로 추정합니다.
오늘은 ‘믿음’과 ‘기적’에 대하여 묵상해 보았으면 합니다. 복음서를 읽다 보면, 우리는 종종 모든 것이 마법처럼 갑자기 이루어지는 것 같은 인상을 받습니다. 사람들은 예수님께 굳은 믿음을 가지고 이것저것을 청하며, 청하는 대로 곧 이루어지는 경우가 많기 때문입니다. 오늘 우리가 읽고 묵상하는 복음 말씀에서는 이 점이 더욱 분명하게 드러납니다.
이와 유사한 기사들을 접할 때마다, 우리는 진솔한 신앙 행위가 늘 즉각적으로 보상을 받던 예수님 시대를 회상하며 꿈을 꾸게 됩니다. 그러나 이러한 꿈이 지나쳐서는 안 됩니다. 진솔한 신앙행위라 하더라도, 그 행위가 필연적으로 기적을 불러들이는 것은 아니기 때문입니다. 흔히 복음서는 보상을 받은 사람들, 청한대로 그대로 이루어짐을 받은 사람들에 대해서는 말하고 있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에 대해서는 언급이 없다는 사실을, 정확하게 말해서 이 경우는 사람들의 관심을 끌지 못해 언급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적시해야 합니다. 이 사람들은 ‘곧바로’가 아니라, 하느님이 그들의 청을 들어주실 때까지 당장이 아니라 ‘오랫동안’, 때로는 정말 오랫동안 기다려야 했을지도 모릅니다.
물론, 하느님께 또는 예수님께 많은 것을 청하는데 두려움을 가질 필요는 없습니다. 그러나 우리의 순수한 신앙행위로서의 기도가 우리의 뜻대로 곧바로 성취된다는 생각, 기적이 곧 이루질 것이라는 기대는 버려야 합니다. 하느님은 당신이 원하실 때, 그리고 당신이 원하시는 방법으로 우리의 청을 들어주시는 분이기 때문입니다. 그러함에도 불구하고, 하느님께서 즉시 응답해주시는 기도가 있다면, 그것은 우리 자신을 좀 더 하느님께 열어주기를 청하는 기도, 하느님의 뜻을 온전하게 직시하고 철저하게 받아들이기를 청하는 기도, 이 땅에 하느님 나라가 오기를 염원하는 기도일 것입니다.
우리가 하느님께 무언가를 청한다는 것은 하느님은 그 청을 들어주시고 이루어주실 수 있는 전능하신 분임을 고백하는 신앙행위입니다. 많은 경우 그 청이 우리의 뜻대로 이루어지기를 바라는 마음이 간절한 것은 사실이나, 그 과정은 전적으로 하느님의 몫임을 인지하고 받아들일 수 있어야 합니다. 자녀가 부모에게 무언가를 청할 때, 부모는 청하는 그대로가 아니라 자녀의 육체적이며 정신적인 건강을 먼저 고려하고 들어주듯이, 하느님께서도 우리의 행복과 구원 사정을 먼저 살피실 것입니다.
오늘 하루, 우리에게 필요한 것을 말씀드리면서도 우리의 뜻이 아니라 하느님의 뜻대로 이루어지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지연되는 것처럼 보이더라도 하느님은 분명히 들어주시고 이루어주신다는 믿음으로 열어나가는, 신앙인다운 하루 되기를 기도합니다.
조욱현 신부님_예수님의 옷에 손을 댄 여자와 살아난 회당장의 딸
오늘 복음은 두 사람의 믿음을 통해 예수님의 권능과 구원의 신비를 본다. 하나는 회당장의 딸, 또 하나는 혈루증을 앓던 여인이다. 이 두 사건은 서로 교차하며, 우리에게 믿음과 겸손, 그리고 하느님의 자비가 어떻게 역사하는지를 보여 준다. 혈루증을 앓던 여인은 오랫동안 육신과 사회적 부정함에 시달렸다. 모세의 율법에 따르면 지속적인 하혈은 부정함으로 여겨졌고, 사회적으로 고립될 수밖에 없었다.(레위 15,25 참조) 그런데도, 여인은 주님께 떳떳하지 않은 모습으로 다가가지만, 믿음으로 구원을 청한다. 예수님께서는 여인을 내세워 “딸아, 용기를 내어라.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다.”(22절)라고 말씀하신다. 성 아우구스티노는 이를 다음과 같이 해석한다. “그 여인의 믿음은 숨겨져 있었으나, 주님께 드러날 때 참된 신앙으로 변하였다. 믿음은 우리를 하느님께로 나아가게 하는 가장 강력한 힘이다.”(In Evangelium secundum Matthaeum, 4,9 요약) 즉, 여인의 행동은 우리의 신앙이 외적 조건이나 두려움에 의해 제한되지 않아야 함을 가르친다. 하느님께 나아가는 믿음은 모든 규범과 한계를 뛰어넘는 용기이다.
회당장은 딸이 죽었다고 생각했지만, 예수님께서는 “자고 있다.”(24절)라고 말씀하신다. 이는 죽음마저 주님의 권능 아래 있으며, 믿음을 통해 생명이 회복될 수 있다는 의미이다. 전통적 해석에서는 회당장의 딸이 이스라엘 민족을, 혈루증 여인이 이방인을 상징한다고 한다. 두 사건이 동시에 일어남으로써, 하느님의 구원 계획이 유다인과 이방인 모두에게 열려 있음을 보여 준다. 오리게네스는 이렇게 주석한다. “죽음은 단순한 육신의 소멸이 아니라 죄와 무지의 상태를 상징한다. 주님께서는 믿음을 통해 영혼을 깨우시고 새 생명을 허락하신다.”(Homiliae in Leviticum, 5,4 요약)
여인의 믿음과 회당장의 믿음 모두 주님께 나아가는 결단과 신뢰로 이루어졌다. 우리도 일상의 두려움, 사회적 편견과 죄책감 속에서도 믿음으로 하느님께 나아가야 한다. 예수님께서는 죽음과 병마, 심지어 인간이 상상할 수 없는 고통까지도 주관하신다. 우리는 죽음, 병, 실존적 어려움 속에서도 주님 안에서 희망을 품도록 해야 한다. 회당장의 딸과 혈루증 여인 사건을 통해 보았듯이 하느님의 구원은 특정 집단에 국한되지 않는다. 교회는 모든 사람에게 열린 사랑과 자비를 실천하며, 믿음을 격려하는 공동체로 살아가야 할 것이다.
믿음은 숨겨져 있어도 하느님께 드러나면 구원을 끌어낸다. 우리는 혈루증 여인과 회당장처럼 믿음을 가지고 주님께 다가가며, 하느님의 자비와 권능을 신뢰하는 삶을 살아가야 한다. 그리고 그 믿음은 우리를 단순히 구원받는 자로만 두지 않고, 다른 이들을 구원으로 이끄는 증인이 되게 하는 것이다.
이병우 신부님_"딸아, 용기를 내어라.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다."(마태9,22ㄴ)
'단순한 믿음, 큰 믿음!'
오늘 복음(마태9,18-26)은 '예수님께서 야이로의 딸을 살리시고, 하혈하는 부인을 고치시는 말씀'입니다.
한 회당장이 와서 예수님께 절하며 이런 '큰 믿음'을 드러냅니다. "제 딸이 방금 죽었습니다. 그러나 가셔서 아이에게 손을 얹으시면 살아날 것입니다."(마태9,18ㄴ)
그리고 열두 해 동안이나 혈루증을 앓고 있었던 여자도 '큰 믿음'을 드러냅니다. 그는 이렇게 생각하면서 예수님 뒤로 다가가 그분의 옷자락 술에 손을 댑니다. "내가 저분의 옷에 손을 대기만 하여도 구원을 받겠지."(마태9,21)
'나의 믿음은?'
'그렇다면 지금 여기에 있는 나의 믿음은 어떤 믿음인가요?'
요즘 시편을 신나게 필사하면서 신구약성경 세 번째 완필을 향해 달려가고 있는데, 어제 아침에 필사한 말씀이 마음에 크게 다가왔습니다. 그래서 '나의 성구(聖句)'로 삼기로 했습니다.
"그분만이 내 바위, 내 구원, 내 성채.
나는 결코 흔들리지 않으리라."(시편62,3)
그리스도인은 하느님을 믿고, 하느님의 완전한 계시(드러남)이신 예수님을 따라가는 사람입니다.
사람을 따라가고, 신부님을 믿는 사람이 아닙니다.
사제는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향해 서 있고, 그 십자가를 가리키는 사람입니다.
'견월망지(見月忘指)', 곧 신부님은 열심히 십자가를 바라보라고 외치고 있는데, 십자가는 바라보지 않고 십자가를 가리키는 신부님만 바라보는 잘못을 저질러서는 안 되겠습니다.
우리도 '큰 믿음'을 드러냅시다!
"내가 오늘 성체를 받아모시기만 하면, 말씀을 가까이 하기만 하면, 기도하면, 십자가를 바라보면, 반드시 다시 살아날 것이다." 라는 단순한 믿음, 큰 믿음을 드러냅시다!
여러분들의 기도 덕분에 어제 관악성당 잘 다녀왔습니다.
비도 피해갔고, 무엇보다도 완판하고 내려왔습니다.
기도에 감사드립니다♡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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