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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미사 (녹) 2026년 10월 23일 (금)연중 제29주간 금요일너희는 땅과 하늘의 징조는 풀이할 줄 알면서 이 시대는 어찌하여 풀이할 줄 모르느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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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중 제29주간 토요일

192603 조재형 [umbrella] 스크랩 02:49

미래학자의 강의를 들었습니다. 사람들은 미래학자에게 이런 질문을 자주 한다고 합니다. “인공지능 시대에도 살아남을 직업은 무엇입니까” 그런데 강사는 사라질 직업과 살아남을 직업을 나누기보다, 앞으로 우리에게 필요한 세 가지를 이야기했습니다. 바로 ‘능력, 태도, 운’입니다. 예전에는 많이 알고, 정확하게 알고, 그것을 좋은 성과로 만드는 사람이 능력 있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나 이제 인공지능은 우리보다 훨씬 많은 것을 알고, 빠르게 분석하고, 때로는 더 좋은 결과를 만들어 냅니다. 그래서 앞으로의 능력은 단순히 많이 아는 것이 아니라, 인공지능이 내놓은 것을 식별하고 새로운 것과 연결하여 의미를 만들어 내는 ‘창발성’이라고 합니다. 저도 영화 ‘오디세이’를 보면서 모세의 오디세이, 바오로 사도의 오디세이, 예수님의 오디세이를 연결해 보았습니다. 서로 다른 이야기를 연결하여 새로운 의미를 발견하는 것도 우리에게 필요한 능력일 것입니다.

 

하지만 능력보다 더 중요한 것이 있습니다. 바로 ‘태도’입니다. 오늘 바오로 사도는 어떤 이는 사도로, 어떤 이는 예언자로, 어떤 이는 복음 선포자로, 어떤 이는 목자와 교사로 세워졌다고 이야기합니다. 모든 사람이 똑같은 일을 할 필요는 없습니다. 중요한 것은 각자가 받은 능력을 어떻게 사용하는가입니다. 칼도 마찬가지입니다. 강도가 사용하면 사람을 해치는 무기가 되지만, 의사가 사용하면 사람을 살리는 도구가 됩니다. 율법도 마찬가지였습니다. 바리사이와 율법 학자들은 율법으로 사람을 판단하고 단죄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율법의 정신을 통해 사람을 용서하고 살리셨습니다. 인공지능도 마찬가지입니다. 선한 마음으로 사용하면 사람을 돕는 도구가 되지만, 욕심과 교만으로 사용하면 새로운 바벨탑이 될 수도 있습니다. 결국 도구보다 중요한 것은 그것을 사용하는 사람의 마음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신앙인은 좋은 ‘태도’를 배우는 사람입니다. 세례자 요한은 “그분은 커지셔야 하고 나는 작아져야 한다.”라고 말했습니다. 그것은 겸손의 태도입니다. 잘못했을 때 부끄러워할 줄 알고, 부끄러움을 느꼈다면 진심으로 뉘우칠 줄 아는 것도 신앙인의 태도입니다. 오늘 예수님께서는 두 번이나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너희도 회개하지 않으면 모두 그처럼 멸망할 것이다.” 회개는 단순히 잘못을 후회하는 것이 아닙니다. 삶의 방향을 바꾸는 것입니다. 나만을 생각하던 마음에서 이웃을 생각하는 마음으로, 성공만을 생각하던 마음에서 의미를 생각하는 마음으로, 경쟁하던 마음에서 함께 살아가는 마음으로 돌아서는 것입니다. 아무리 뛰어난 능력을 갖췄어도 마음의 방향이 잘못되어 있다면 그 능력은 오히려 세상을 힘들게 할 수 있습니다.

 

강사는 세 번째로 ‘운’을 이야기했습니다. 이미 충분한 경험과 능력이 있는 사람에게 인공지능은 날개가 될 수 있습니다. 더 높이 날아오를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이제 막 사회생활을 시작하는 젊은이들에게는 오히려 올라가야 할 사다리를 걷어차는 것처럼 느껴질 수도 있습니다. 예전에 신입사원이 하던 일을 인공지능이 대신하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노동의 의미도 새롭게 생각해야 합니다. 돈을 벌고 실적을 만드는 일만 노동이라고 할 수는 없습니다. 치매 노인을 돌보는 젊은이는 놀고 있는 것이 아닙니다. 요양원에서 봉사하는 젊은이도 놀고 있는 것이 아닙니다. 성당에서 청소년을 가르치고, 전례를 돕고, 어려운 이웃을 찾아가는 사람도 놀고 있는 것이 아닙니다. 세상이 보상하지 않더라도 누군가의 삶을 살리고 공동체를 따뜻하게 만드는 일은 분명 가치 있는 노동입니다.

 

오늘 복음의 포도나무 비유는 우리에게 또 하나의 희망을 줍니다. 열매 맺지 못하는 무화과나무를 베어버리려 하자 포도 재배인은 말합니다. “주인님, 이 나무를 올해만 그냥 두시지요. 그동안에 제가 그 둘레를 파서 거름을 주겠습니다.” 세상은 능력이 부족하면 버리고, 성과가 없으면 잘라내려고 합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기다려 주십니다. 다시 기회를 주십니다. 땅을 파고 거름을 주십니다. 우리는 그것을 ‘운’이라고 부를 수도 있지만, 신앙인은 그것을 ‘은총’이라고 부릅니다. 내가 잘해서만 여기까지 온 것이 아니라 누군가가 나를 기다려 주었고, 누군가가 나에게 기회를 주었으며, 무엇보다 하느님께서 다시 시작할 시간을 주셨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도 다른 사람에게 기회를 만들어 주어야 합니다. 쓰러진 사람에게 사다리를 놓아 주고, 뒤처진 사람에게 기다려 주며, 아직 열매를 맺지 못한 사람에게 거름을 주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결국 인공지능 시대에 중요한 것은 어떤 직업이 살아남느냐가 아닙니다. 내가 의사인가, 교사인가, 사제인가, 사업가인가 하는 것이 가장 중요한 것이 아닙니다. 바오로 사도의 말씀처럼 우리는 서로 다른 자리에서 서로 다른 일을 하지만, 결국 “사랑으로 성장하는” 한 몸을 이루도록 부름을 받았습니다. 능력이 있다면 사람을 살리는 데 사용해야 합니다. 좋은 태도를 가지고 있다면 겸손과 회개의 삶을 살아야 합니다. 좋은 기회를 받았다면 그것을 혼자 누리지 말고 다른 사람에게도 나누어야 합니다. 인공지능은 많은 일을 대신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병든 이를 바라보며 마음 아파하고, 외로운 사람의 손을 잡아 주며, 기다려 주고 용서하고 사랑하는 따뜻한 마음은 우리가 지켜야 할 인간의 몫입니다. 주님께서 우리에게 바라시는 열매도 바로 그런 사랑의 열매일 것입니다.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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