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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미사 (자) 2026년 11월 2일 (월)죽은 모든 이를 기억하는 위령의 날 - 첫째 미사기뻐하고 즐거워하여라. 너희가 하늘에서 받을 상이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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빠다킹신부와새벽을열며(2026,11,02)

192803 김중애 [ji5321] 스크랩 03:39

 

2026년 11월 2일

위령의 날

노벨 문학상 수상자인 ‘주제 사라마구’

의‘죽음의 중지’라는 책을 읽고 있습니다.

그 시작은 아주 충격적입니다. 어느 날

갑자기 사람들이 죽지 않게 됩니다.

사람들은 환호하고 좋아했지요. 하지만

늙고 아픈 사람이 끝없이 살아남아 병원

이나 요양시설을 떠나지 못하게 됩니다.

죽음이 멈추자, 고통이 끝나지 않고,

사회 질서와 돌봄 체계가 무너지게

되었습니다. 사람들은 불안해지고

커다란 혼란을 가져온다는 내용으로

책은 시작합니다. 이 책을 읽으며

죽음을 다시 생각하게 됩니다. 사랑하는

사람의 죽음은 아프지만, 반드시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죽음을 진지하게 생각

하면 자기 삶에서 정말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를 계속 떠올릴 수밖에 없습니다.

중요한 관계에 더 마음을 쓰고, 오래

미뤄둔 일에 손을 대게 되며, 정말

원하는 것에 시간을 쓰게 될 것입니다.

죽음은 단순히 생의 끝이 아니라,

지금을 잘 살게 하는 원동력이 됩니다.

특히 우리 신앙인은 하느님 나라에서의

영원한 생명을 목표로 합니다. 따라서

죽음에 앞서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분명해집니다. 지금 당장 사랑의 삶을

살아야 하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는

위령의 날을 맞이합니다. 위령의 날은

이 지상의 순례를 마치고 하느님 자비

의 품으로 돌아간 모든 신자, 특히

연옥에서 완전한 정화를 기다리는

영혼들을 기억하고 기도하는 날입니다.

결코 죽음으로 모든 것이 무효화되는

것이 아니고, 죽음 이후에는 아무것도

없는 것이 아님을 알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도 오늘 복음인 행복 선언을

통해 세상의 기준인 성공이나 안락을

축복으로 규정하지 않으십니다.

오히려 스스로의 무력함을 인정하고

오직 하느님께만 의탁하는 이들을

행복하다고 선언하십니다. 죽음이라는

절대적 한계 앞에서 인간은 자신이

아무것도 쥐고 갈 수 없는 철저한

결핍의 존재임을 마주하게 됩니다.

그러나 복음은 오늘 위령의 날에

죽음이 끝이 아니라, 하느님의 완전한

위로와 보상이 시작되는 구원의 전환점

임을 드러내고 있습니다. 이 복음

말씀을 통해 지금을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를 묵상할 수 있게 됩니다.

주님께서 그토록 강조하셨던 삶,

'즉 사랑의 삶을 살아야 합니다.

자기만 사랑하는 것이 아닙니다.

나와 이웃을 더 나아가 우리보다

먼저 하느님 곁으로 가신 분들을

위해서도 사랑의 마음으로 다가설 수

있어야 합니다. 죽음을 피해야

할 것으로만 생각해서는 안 됩니다.

지금을 더 잘 살게 하는 원동력으로

죽음을 바라볼 수 있어야 합니다.

♡오늘의 명언♡

삶의 무게는 무엇을 손에 쥐었는가가 아니라,

누구의 곁에 머무는가에 달렸음을 배웠다.

(성 샤를 드 푸코)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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