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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미사 (녹) 2026년 11월 3일 (화)연중 제31주간 화요일큰길과 울타리 쪽으로 나가 사람들을 들어오게 하여, 내 집이 가득 차게 하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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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영근 신부님_“행복하여라, ~하늘나라가 그들의 것이다.”(마태 5,1-12)

192812 최원석 [wsjesus] 스크랩 2026-11-02

* 오늘의 말씀(11/2) : 죽은 모든 이를 기억하는 위령의 날

* 제1독서 : 욥 19, 1. 23-27ㄴ

* 제2독서 : 로마 5, 5-11

* 복음 : 마태 5, 1-12

* <오늘의 강론>

나뭇잎들 내내 달려와, 단풍이 되었습니다. 참 아름답습니다. 사라져가는 아름다움입니다. 사라져 없어져가는 아름다움입니다. 그것은 ‘죽음’의 아름다움입니다.

단풍! 이토록 아름다운 변색! 사실, 잎들은 가슴 속 이미 단풍을 지니고 있었을 것입니다. 이미 있었던 것이 드러나고서야 우리는 비로소 그 단풍을 본 것일 뿐입니다.

그렇습니다. ‘죽음’도 매 한가지일 것입니다. 새로운 것이 아니라, 이미 우리 안에 있었던 것이 드러나게 되는 일일 뿐일 것입니다. 이미 우리 안에 있는 ‘죽음’을 우리가 보지 못하거나 보지 않으려 했을 뿐일 것입니다. 그러다가 막상 그 죽음을 마주치게 되면, 마치 새로운 사실을 맞은 듯이 대할 뿐일 것입니다.

오늘 위령의 날, 우리는 이미 죽은 이들을 기억하면서, 동시에 우리 자신의 ‘죽음’과 우리에게 ‘죽음’이라는 것이 무엇인지를 들여다봅니다.

‘죽음’은 참으로 하나의 진정한 만남일 것입니다. 다름 아닌 우리가 희망하던 분과 만나는 일일 것입니다. 그러니 ‘죽음’은 그분과 만나는 통로입니다.

오늘 <제1독서>의 <욥기>는 바로 이러한 만남의 희망을 말해주고 있습니다.

“나는 알고 있다네, 나의 구원자께서 살아계심을, ~내 살갗이 이처럼 벗겨진 뒤에라도 이내 몸으로 나는 하느님을 보리라. 내가 기어이 뵙고자하는 분, 내 눈은 다른 이가 아니라 바로 그분을 보리라.”(욥기 19,25-27)

사실, 우리는 ‘영원’을 배우기 위해 이 세상에 태어났다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본래 영원불멸한 존재인 우리의 영혼이 영원하면서도 영원한 줄을 모르기에, 이 세상의 한계와 제한을 통하여 영원한 존재임을 배우게 된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마치 악을 보면서야 선이 무엇인지를 배우듯이 말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당신의 죽음을 통하여, “우리의 죽을 몸에 하느님의 생명이 살아있음”을 알려주셨습니다. 사도 바오로는 말합니다.

“우리는 언제나 예수님의 죽음을 몸에 짊어지고 다닙니다.

우리의 몸에서 예수님의 생명도 드러나게 하려는 것입니다.”(2코린 4,10)

오늘도 우리는 ‘죽음’을 몸에 달고 다닙니다. 하루하루 죽으면서 삶을 살아갑니다. 새싹처럼, 내 몸 안에서 단풍을, 곧 ‘죽음’을 성숙시켜갑니다. 아니, 영원을 향하여 달려갑니다.

마지막 교부 철학자인 보에티우스(470~524)는 말합니다.

흘러가버리는 지금이 시간을 만들고, 머물러 있는 지금이 영원을 만든다. 아멘.

하오니, 주님!

나날의 저의 죽음에서 당신의 생명이 드러나게 하소서. 

 

“행복하여라, ~하늘나라가 그들의 것이다.”(마태 5,1-12)

주님!

자비롭게 하소서. 당신의 자비의 입었으니,

제 마음이 깨끗해지게 하소서. 당신 손길로 매만지셨으니,

평화를 위해 일하게 하소서. 당신 영으로 이끄셨으니,

기뻐하고 즐거워하게 하소서. 당신이 동행하시니,

저의 생명은 그 누구도 어쩔 수 없는 ‘주님의 것’이오니, 저를 다스리소서. 아멘.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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