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건태 신부님_조욱현 신부님 묵상
-
192815 최원석 [wsjesus] 스크랩 09:22
-
김건태 신부님_위령의 날 등잔과 기름
흩날리는 낙엽 소리에도 감정이 풍부해지는 계절, 한복판에 들어서 있습니다. 고운 빛깔, 아름다운 색깔을 띠고 떨어지는 낙엽을 보면서 어떤 생각이 드시는지 모르겠습니다. 혹시, 제때, 때가 되어 떨어지는 것들이 아름답다는, 행복해 보인다는 생각은 안 해 보셨는지 모르겠습니다. 꽃이 아름다운 것은 지기 때문이고, 생명이 소중한 것은 언젠가 끝나기 때문이랍니다.
하느님은 당신의 피조물인 이 자연을 잘 관리하도록 우리에게 맡겨주셨다지만, 실은 자연을 통해 배우라고, 많이 본받으라고 맡겨주셨다는 생각입니다. 한 해를 잘 산 나뭇잎들은 제때가 되면 잘 떨어집니다. 떨어지는 낙엽을 보면서 죽어서 떨어진다고 생각하실지 모르지만, 그렇지 않습니다. 낙엽은 살아서 떨어집니다. 물기를 머금지 못하면, 곧 살아 있지 않으면, 절대 떨어지지 못하는 것이 낙엽입니다. 떨어지지 못하면 이미 그것은 낙엽이 아닙니다. 겨우 내내 말라비틀어진 채 나뭇가지에 매달려 있는 잎사귀의 안타까운 모습을 자주 목격하는 이유입니다. 잘 살아야 잘 죽을 수 있고, 또 잘 죽어야 잘 살 수 있다는 자연의 섭리와 가르침 앞에 마음을 조아릴 수밖에 없습니다.
주님은 오늘 잘 사는 방법, 그러니까 잘 죽는 법을 ‘열 처녀 비유’ 이야기를 통해 일러주십니다. 신랑이 온다는 것은 너무나 자명합니다. 언제, 어떻게 올지 모르는 것이 문제이긴 하지만, 그래도 천만다행으로 열 명의 처녀 모두에게 신랑을 맞이하기 위해 꼭 필요한 것, 곧 등잔이 주어져 있다는 사실입니다. 신랑을 맞이할 자격은, 다시 말해서 하느님 나라의 잔칫상에 참여할 자격은 모두에게 주어져 있다는 말씀입니다. 흘러넘치도록 기름을 가지고 있다 해도, 등잔이 없으면 신랑을 맞이할 수도, 혼인 잔치에 들어갈 수도 없기 때문입니다. 기름 마련에 앞서 이 등잔 자체, 이 등잔이 주어졌다는 사실 자체를 마음에 새겨야 할 것입니다.
하느님은 이처럼 잔칫상을 다 준비해 놓으시고, 등잔까지 적당한 것으로, 각자에게 알맞은 것으로 쥐여주십니다. 그리고서는 당신 하시는 일에 우리 인간이 끼어들 수 있도록, 죄송한 마음 또는 감사의 마음으로 무언가 할 수 있도록 기회를 주고 계십니다. 그저 기름만 조금 준비하면 된다는 자비하신 하느님의 모습을 확인합니다.
따라서 기름 마련은 잔칫상에 참여하기 위한 자격과는 무관한 것입니다. 자격은, 다시 말해서 등잔은 이미 주어졌기 때문입니다. 거저 주어진 이 선물, 더 들어가 보면 구원이라는 하느님의 이 선물 앞에 우리가 할 일이라고는 감사의 마음과, 이 마음의 표현일 뿐입니다. 기름 마련은 그러기에 구원이라는 선물 앞에 우리가 드러내 보여야 할 감사의 표현, 감사의 행위이어야 합니다.
세상 구원을 위해 당신의 독생 성자 예수 그리스도를 십자가상 제물로 내주신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그냥 거저 주시는 구원이라는 선물 앞에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참으로 많습니다. 기도할 수 있고, 봉사와 희생으로 사랑 실천에 앞장설 수 있고 등등입니다. 감사하는 마음으로 말입니다. 감사하는 마음으로 기도하면, 그만해도 될 것 같은데도 더 하게 됩니다. 고마운 마음으로 사랑 실천에 임하면, 어디서 그런 힘과 용기와 지혜가 나오는지 기적 같은 일까지 해내고야 맙니다. 어림도 없었던 내 모습을 발견하게 됩니다. 감사한데, 고마운데, 어찌 머리를 굴리고, 어찌 주위를 살피고, 어찌 “이 정도면 됐다”하는 어림도 없는 생각을 가질 수 있겠습니까!
오늘 하루, 하느님께서 우리 각자에게 꼭 맞는 것으로 나누어주신 등잔을 받잡고서, 감사의 마음으로 기름 마련을 위해 애쓰며, 좀 더 여유 있고 너그러운 마음으로 형제들과 함께 지상에서 이미 하늘나라 잔칫상을 그려보고 맛보셨으면 합니다.
나아가, 앞서가신 분들이 기름 마련에 부족함이 있었다 하더라도, 주님께서 당신의 그 크신 자비로 용서해 주시고, 그분들 모두 영원한 천상 잔칫상에 참여할 수 있도록 청하는 기도 아끼지 않는 거룩한 한 달, 위령성월이 되었으면 합니다.
조욱현 신부님_복음: 마태 11,25-30: 내가 너희에게 안식을 주겠다.
오늘은 우리보다 먼저 하느님의 생명에 참여하여 새로운 삶을 살고 계시는 분들을 기억하며, 그분들로부터 받은 은혜에 감사드리는 날이다. 또한, 아직 완전한 하느님과의 일치를 향해 정화의 여정에 있는 영혼들을 위해 하느님의 자비를 간청하는 날이기도 하다. 그러나 이날은 단순히 죽은 이를 위한 날이 아니라, 우리 자신이 언젠가 반드시 맞이하게 될 죽음의 신비를 묵상하며 지금의 삶을 되돌아보는 영적 성찰의 날이기도 하다.
1. 연옥: 하느님 자비의 불
교회는 연옥을 “마지막 정화의 상태”로 이해한다. 연옥은 하느님의 벌이 아니라, 그분의 사랑과 자비가 마침내 완성되는 정화의 과정이다. 트리엔트 공의회(1545-1563년)는 이 교리를 명확히 정의하며, 연옥에서 영혼은 “하느님의 정의로운 심판을 받아들여 고통을 견디면서, 정화의 은총을 통해 천국에 들어갈 준비를 한다.”(의역)라고 가르친다. 성 아우구스티노는 이렇게 말한다. “불에 의해 구원될 자들도 있다. 이는 그들의 죄가 영원한 것이 아니라 일시적이기에, 정화의 불을 통해 하느님의 나라에 들어갈 수 있기 때문이다.”(Enchiridion, 69 의역) 이러한 정화의 상태를 교회는 ‘연옥’이라 부르며, 하느님의 성성(聖性), 정의, 자비가 동시에 드러나는 자리로 이해한다. 하느님께서 인간을 단죄하기보다는 그분의 품에 들어올 수 있도록 마지막 정화의 은총을 주시는 것이다.
2. 교회의 교리와 전통 속의 연옥
연옥에 대한 교회의 가르침은 신앙의 긴 역사 안에서 정립되었다. 리용 공의회(1274)와 피렌체 공의회(1439)는 연옥의 존재와 그 영혼을 위해 산 이들의 기도와 미사, 선행이 유익하다고 가르쳤다. 트리엔트 공의회(1545–1563)는 연옥의 영혼들을 위한 기도와 대속(代贖)의 행위가 참으로 도움이 된다고 공식적으로 선언했다. 이것은 죽은 이들과 산 이들이 모든 성인의 통공 안에서 서로 연결되어 있다는 믿음 위에 서 있다. 성 요한 크리소스토모는 이렇게 가르친다. “죽은 이들을 위해 기도하라. 이는 그들에게 위로가 되고, 우리에게 유익이 된다. 한 몸 안에서 그들이나 우리가 분리될 수 없기 때문이다.”(Homilia in Philippenses, 3 의역)
3. 연옥의 정화와 희망
연옥의 영혼들은 자신이 지은 죄에 대한 정화의 고통을 받는다. 그러나 그 고통은 절망이 아니라, 희망 안에서의 고통이다. 그들은 이미 구원받았으며, 하느님께 도달할 것이 확실하기 때문이다. 제노바의 성녀 가타리나는 ‘연옥 논고’에서 이렇게 말한다. “연옥의 영혼들은 고통받지만, 그 고통 안에 가장 큰 기쁨이 있다. 그들은 하느님께로 가까워지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연옥의 고통은 하느님의 사랑이 불처럼 작용하는 정화의 과정이다. 이 불은 미움의 불이 아니라, 불순물을 태우는 사랑의 불, 곧 하느님 자신이다(히브 12,29 참조).
4. 산 이들의 사랑: 통공의 신비
연옥의 영혼들은 더 이상 스스로 아무것도 할 수 없지만, 지상에 있는 우리들의 기도와 희생, 미사를 통해 그들의 고통은 줄어들고 정화는 빨라진다. 이는 마치 부모가 빚을 남기고 돌아가셨을 때, 그 부모를 사랑하는 자녀가 대신 그 빚을 갚아 그의 명예를 회복시켜 드리는 것과 같다. 사랑은 죽음보다 강하기 때문이다.(아가 8,6 참조) 성녀 모니카는 죽음을 앞두고 아들 아우구스티노에게 이렇게 부탁했다. “내가 어디에 묻히든 상관없다. 다만, 주님의 제단에서 나를 기억해다오.”(Confessiones, IX,11 의역) 오늘 우리가 드리는 위령미사는 바로 그 기억과 사랑의 행위이다. 우리가 바치는 이 미사와 기도는 하느님께서 자비로이 받아들이시어, 연옥의 영혼들에게 참된 평화를 주실 것이다.
5. 모든 성인의 통공: 하늘과 땅의 연결
우리는 신앙 고백에서 “모든 성인의 통공을 믿나이다.”라고 말한다. 이는 지상의 교회, 연옥의 교회, 천상의 교회가 서로 떨어져 있는 세 공동체가 아니라 한 몸, 한 교회임을 의미한다. 천상의 교회는 완전한 일치 속에서 우리를 위해 전구한다. 연옥의 교회는 정화 속에서 하느님께 나아가며, 우리의 기도가 필요하다. 지상의 교회는 기도와 선행으로 그들과 통공한다. 이 세 교회는 모두 그리스도의 몸 안에서 하나이며, 우리의 사랑은 죽음으로 끊어지지 않는다.(로마 8,38-39 참조)
6. 복음의 위로: “내가 너희에게 안식을 주겠다.”
오늘 복음에서 주님은 말씀하신다. “고생하고 무거운 짐을 진 너희는 모두 나에게 오너라. 내가 너희에게 안식을 주겠다.”(마태 11,28) 이 말씀은 단지 살아 있는 이들에게만이 아니라, 모든 피로한 영혼들, 특히 정화 중인 영혼들에게 주시는 위로의 말씀이다. 그분의 멍에는 편하고, 그분의 짐은 가볍다. 하느님께서는 당신 품 안에서 모든 영혼에게 참된 안식을 주신다.
7. 결론: 사랑의 기념과 희망의 기도
오늘 우리는 돌아가신 부모님, 형제자매, 친지들, 그리고 이름 없이 세상을 떠난 모든 영혼을 기억한다. 그들이 하느님의 얼굴을 뵙고, 영원한 생명 안에 머무르도록 기도하자. “의인들의 영혼은 하느님의 손안에 있어 어떠한 고통도 겪지 않을 것이다.”(지혜 3,1) 우리가 오늘 드리는 이 미사 안에서 그들의 평화를 빌며, 동시에 우리 자신의 구원을 새롭게 다짐하자. 우리의 삶 또한 언젠가 주님의 품 안에서 그들과 다시 만나리라는 희망 안에서 이 미사를 봉헌하자.“주님, 죽은 모든 이에게 영원한 안식을 주소서. 영원한 빛이 그들에게 비추게 하소서.”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

-
- [죽은 모든 이를 기억하는 위령의 날 첫째미사]
-
192818
박영희
11:05
-
반대 0신고 0
-
- 죽은 모든 이를 기억하는 위령의 날 묵상
-
192817
손영줄
09:26
-
반대 0신고 0
-
- 김건태 신부님_조욱현 신부님 묵상
-
192815
최원석
09:22
-
반대 0신고 0
-
- 하느님의 관대함과 자비를 기억하며
-
192814
손영줄
09:21
-
반대 0신고 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