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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미사 (녹) 2025년 8월 30일 (토)연중 제21주간 토요일네가 작은 일에 성실하였으니 와서 네 주인과 함께 기쁨을 나누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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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셉 신부님의 매일 복음 묵상 - 노키즈존과 낙태, 무엇이 우리를 괴물로 만드는가?

183948 김백봉 [gloria7] 스크랩 2025-08-05

 

 

 

 

 

 

2025년 다해 8월 복되신 동정 마리아 신심 미사

 

 

 

<노키즈존과 낙태, 무엇이 우리를 괴물로 만드는가?>

 

 

 

복음: 루카 2,15ㄴ-19

 






하느님의 아들이며 말씀이신 그리스도

(1540-1550), 모스크바 크레믈린 Cathedral of the Sleeper

 

 

 

 

 

    +찬미 예수님.

여러분, 이 세상에는 중력의 법칙처럼 절대로 변치 않는 영적인 법칙이 하나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이것입니다. 살리려는 자 살 것이요, 죽이려는 자 죽을 것입니다. 이것은 예외 없는 법칙입니다.

 

 

    오늘 우리는 이 법칙을 외면하는 시대에 살고 있습니다. ‘노키즈존’이라는 팻말은 아이들의 소란을 ‘죽여서’ 어른들의 평온을 ‘살리겠다’는 작은 선언입니다. 낙태를 합법화하려는 시도는 한 생명을 ‘죽여서’ 나의 계획된 삶을 ‘살리겠다’는 거대한 외침입니다. 우리는 자꾸만 무언가를 죽이고 제거해야만 내가 살 수 있다고 믿습니다. 하지만 그럴수록 우리 사회와 우리 영혼이 정말 살아나고 있습니까? 아니면 점점 더 죽어가고 있습니까?

 

 

    ‘죽이려는 자는 반드시 죽는다’는 이 법칙이 어떻게 작동하는지, 먼저 소설과 역사 속에서 살펴보겠습니다.

소설 '프랑켄슈타인'에서, 천재 과학자는 생명을 창조했지만 그 모습이 흉측하다는 이유로 그 존재를 부정하고 버립니다. 자신의 완벽한 세계에 나타난 ‘문제’를 죽여 없애려 한 것입니다. 그 결과는 무엇이었습니까? 버림받은 피조물은 복수의 화신이 되어 창조주의 가족과 친구, 그의 세상 모든 것을 파괴했고, 마침내 창조주 자신마저 고독과 절망 속에서 죽게 만들었습니다. 죽이려는 자 죽을 것입니다. 이것은 예외 없는 법칙입니다.

 

 

    이것은 소설 속 이야기만이 아닙니다. 조선의 왕 연산군은 어머니의 복수를 명분으로 수많은 신하를 죽였습니다. 자신의 정적을 죽여야만 자신의 왕위가 살 수 있다고 믿었습니다. 하지만 사람을 죽일수록 그는 살아남은 이들을 의심하게 되었고, 불신은 그를 외롭게 했으며, 고독은 그를 미치게 했습니다. 결국 그는 가장 믿었던 이들에게 버림받아 유배지에서 쓸쓸히 죽어갔습니다. 그는 수많은 사람을 죽였지만, 결국 그가 죽인 것은 자기 자신의 영혼과 삶이었습니다.

 

 

    하지만 여러분, 이 무서운 법칙에 절망할 필요는 없습니다. 법칙은 양면을 모두 가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죽이려는 자가 죽는다면, 반대로 살리려는 자는 반드시 살 것입니다. 왜냐하면 생명은 제거할 문제가 아니라, 바로 나 자신을 완성시켜줄 하느님의 가장 위대한 선물이기 때문입니다.

 

 

    이 위대한 진리를 삶으로 보여주신 분이 바로 하늘의 어머니, 성모님이십니다. 천사가 마리아에게 전한 소식은, 당시의 기준으로 그녀의 사회적 생명을 ‘죽일 수도 있는’ 위험한 사건이었습니다. 그러나 성모님은 그 모든 위험을 감수하고 당신 안에 있는 생명을 ‘살리겠다’고 결심하십니다. “보십시오, 저는 주님의 종입니다. 말씀하신 대로 저에게 이루어지기를 바랍니다.”(루카 1,38) 이 위대한 순명으로, 그녀는 단지 한 아기를 살린 것이 아니었습니다. 온 인류를 살렸고, 무엇보다 자기 자신이 구원의 어머니요 하늘의 모후로 영원히 살아나는 길을 선택하신 것입니다. 살리려는 자 살 것이라는 법칙의 가장 완벽한 증명이 바로 성모님이십니다.

 

 

    이 법칙은 성인들의 삶에서도 그대로 증명됩니다. 1950년 흥남부두에서 레너드 라루 선장은 자신과 선원들을 지켜줄 무기를 버리고, 그 자리에 1만 4천 명의 생명을 태워 ‘살렸습니다’. 그 결과 그는 어떻게 되었습니까? 그는 돈과 명예를 얻는 대신, 자신의 영혼이 구원받았음을 깨닫고 남은 생을 하느님께 봉헌하는 수도자가 되었습니다. 그는 다른 이들을 살림으로써 자기 자신이 영원히 사는 길을 찾은 것입니다.

 

 

    ‘하느님의 종’ 도로시 데이는 어떻습니까? 젊은 시절 방황하던 그녀는 딸 ‘타마르’를 낳고 그 생명을 뜨겁게 사랑하며 ‘살리기로’ 결심합니다. 딸에게 영원한 생명을 주고 싶어 세례를 받게 한 그 선택이, 결국 도로시 자신의 영혼을 구원의 길로 이끌었습니다. 한 명의 딸을 살리려던 그 사랑이, 그녀 자신을 살리고 나아가 수많은 가난한 이들을 살리는 ‘가톨릭 일꾼 운동’의 시작이 되었습니다.

 

 

    오늘 우리는 두 갈래의 길 앞에 서 있습니다. 프랑켄슈타인과 연산군처럼, 내 앞의 생명을 문제로 여기고 죽여서 내가 살려는 길. 그 끝은 공허와 파멸뿐입니다. 그리고 성모님과 라루 선장, 도로시 데이처럼, 내 것을 희생해서라도 생명을 살리려는 길. 그 끝은 완성된 기쁨과 영원한 생명입니다.

 

 

    오늘 우리가 이 성당 문을 나서며 기억해야 할 것은 바로 이 예외 없는 법칙입니다. 살리려는 자 살 것이요, 죽이려는 자 죽을 것입니다. 생명은 제거할 문제가 아니라, 우리 자신을 완성시켜줄 가장 위대한 선물입니다.

    이번 주, 우리 마음속에 이 생명의 법칙을 실천해 봅시다. 아이의 울음소리가, 배우자의 잔소리가, 직장 동료의 실수가 내 마음을 불편하게 할 때, 그들을 문제로 여기며 내 마음속에서 죽이지 맙시다. 대신 이렇게 아주 작은 기도를 바쳐보는 겁니다. 

    “주님, 이 또한 살아있다는 증거이니 감사합니다. 저를 살리시기 위해 보내주신 선물로 여기고 사랑하게 하소서.” 이 작은 기도가 ‘죽이려는 자’에서 ‘살리려는 자’로 우리를 바꾸어 줄 것입니다.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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